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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헌법과 정의 수호 의지가 있는가?

기사입력 2023.04.0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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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열린정책뉴스]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통과시켰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검수완박)에 대해 ‘위장 탈당’을 통한 법사위 심사과정이 위법했지만, 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절차가 잘못됐다고 하면서 그런 절차로 만든 법은 유효하다는 판결은 모순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 힘은 이에 대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식의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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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종 열린정책뉴스 논설위원

     

    이번 검수완박법에서 국민이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소위 ‘꼼수 위장 탈당’이었다. 세계 의회 정치에서 유례가 없는 한국 의회 정치의 ‘꼼수’였다. 원래 법사위 안건 조정위는 법안의 신중한 처리를 위해 여야 3명씩 6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당 의원 1명을 위장 탈당시켜 야당 몫이라고 우기면서 4대 2로 만들어 안건 조정위를 무력화했다. 이후 17분 만에 일사천리로 법안이 통과됐다. 이는 90일간의 숙의 기간을 보장하는 국회법 취지를 어긴 것이다. 국회법이 최장 90일간의 숙의 기간을 보장하고 있는 취지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되 의석수 비율과 상관없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실질적 토론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안건 조정위는 이와 같은 헌법 정신을 위배했다. 때문에, 헌재도 이 ‘위장 탈당’을 위법이라 판단하여 재판관 5대 4의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법사위 안건 조정위 처리 과정은 위법이라고 판단하였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심의·의결권은 침해하지 않았으므로 가결, 선포는 유효하다고 보아 재판관 5대 4의 합법 결정을 하였다. 본회의에서는 당시 야당인 국민의 힘이 무제한 토론으로 이를 저지하려고 하였지만, 민주당이 ‘회기 쪼개기’로 이를 봉쇄했는데 이 부분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헌재의 논리대로 절차가 위법인데 결과가 합법이라면 논리적 모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국회의 입법 절차에서 특권과 반칙이 나올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헌재는 한 장관과 검사 6명이 검사의 헌법상 권한인 수사·소추권을 침해했다고 낸 권한 쟁의 심판 청구에 대해서는 각하했다. 이유는 장관은 수사·소추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아 청구인 자격이 없고, 검사들의 경우 수사·소추권은 국가 기관 사이에서 조정, 배분한 것이라 권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는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고 고발인의 이의 신청권을 배제한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부분에 대하여 헌재가 판단하지 않았다. 검수완박법이 시행되면서 경찰은 업무량이 늘어나 사건 처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문제점이 여러 번 제기되었다. 이 법 시행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인데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 부분은 아예 판단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은 문제다. 장관의 수사·소추권이 인정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본안에서 더 깊이 판단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재의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이념 성향에 따른 판결을 보는 것 같다. 검수완박법이 정당하다고 본 재판관 5명은 진보성향이고, 반대로 이 법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4명은 보수·중도 성향이다. 특기할 것은 진보성향인 재판관 1명이 이 법의 절차는 위법하다면서도 결과는 적법하다는 모순된 판결을 내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검수완박법은 적법한 것으로 판결되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관이 정치적 결정을 한다면 헌재 스스로 그 존재의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정의는 응분의 몫을 갖게 하고 권리와 의무의 올바른 분배를 추구한다. 정의는 일반적으로 결과적 정의와 절차적 정의로 구분한다. 결과적 정의는 성과에 대한 보상 기준으로 형평, 평등과 같은 공정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절차적 정의는 의사결정의 과정이 공정한가를 다루는 개념으로 이번 판결의 ‘위장 탈당’ 예가 이에 해당한다.


    사회정의 수립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롤스는 정의 달성을 위한 조건으로 여러 대안 중에서 선택하는 참여자들이 지켜야 할 조건으로 ‘무지의 베일’을 제시하고 있다. ‘무지의 베일’은 결정 참여자들이 지녀야 할 지식의 조건으로서 참여자들이 자신과 사회의 특수한 사정에 무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참여자 누구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 계층 상의 위치, 자신의 가치관, 심리적 성향, 미래 희망에 대한 기대도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 참여자는 특정 계층이나 지역의 편이 아닌 도덕적 탁월성 안에서 공정으로서 정의관에 따라서만 행동해야 한다. 롤스가 심사 참여자에게 이처럼 초연함을 유지하라는 권유는 말할 것도 없이 심사의 공정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추호의 사심이나 이해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 재판관은 추천자에 대해 보은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이념성향과 이해타산에 젖어서도 안 되고 오직 불편부당, 청렴, 투명성 안에서 헌법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임명·선출·지명하도록 되어 있어 바뀌게 마련이다. 지금은 진보성향인 재판관이 많지만,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9명이 모두 교체될 예정이어서 진보 대 보수 재판관 구성비는 변할 수 있다. 이 경우 지금과 같은 입법 시비 사건이 헌재에 상정되었을 때 보수·중도 성향 재판관이 좌지우지 할 수도 있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헌법재판관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사법과 정의의 최후 보루이다. 헌법재판관은 존 롤스가 주장하는 무지의 베일 조건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편견, 성향, 계층을 떠나 오직 도덕적 탁월성으로 헌법 정신에 기반하여 공정한 정의를 수립할 책무가 있다. 국회는 검수완박법의 절차가 위법이라는 헌재의 판결이 나온 점과 법 시행으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이 법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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