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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전쟁을 준비하는 자가 지킬 수 있다

기사입력 2021.05.2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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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열린정책신문] 부처님 오신 날 아이들을 만났다. 초등학교 2학년 손자 아이가 역사 실력을 자랑한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맞아. 할아버지가 그해에 태어났다”라고 대답했다. 순간 아이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되면서, “전쟁 중에 태어났다고요?”하고 놀란다. 그래, 정확히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4개월 전이라고 대답했다. 두 번째 질문이 날아들었다. “고려 강감찬 장군이 거란을 무찌르고 승리한 때 장군의 나이는 얼마인가요?” 모르겠다. “72살이에요” 그렇구나.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책에서 읽었다고 한다.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의 승리가 그 유명한 귀주대첩이 아닌가.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함께 우리 민족이 외적을 무찌른 3대첩의 하나이다. 아이한테 나라 사랑 정신을 배운다. 국가를 지키는데, 나이 한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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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종 경찰학박사(전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

     

    생각해보니 전쟁은 늘 내 가까이 있었다. 6.25 전쟁이 발발한 해에 출생하고, 해군 복무 시절 북한함정과 마주하여 일촉즉발의 순간을 갖기도 하였다. 당시 탑승한 해군 초계함의 출동은 진해에서 출발하여 서해 5도를 경비하고, 백령도와 인천 사이 오가는 선박의 보호와 우리 어선들이 북방한계선을 넘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담당 해역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서해는 조기 철과 꽃게 철이 되면 많은 어선이 몰려들었고, 북방한계선 쪽으로 갈수록 고기가 잘 잡혀 어선들이 북쪽으로 올라가곤 하였다. 그 날도 어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는 상황이라 전속력을 내어 남쪽으로 유도하는 중, 갑자기 북한 경비정이 나타났다. “총원 전투 준비”가 내려지고 함포에 포탄을 장전하고 전 부대원이 개인화기로 완전무장한 채 불과 50m 거리에 남·북한 함정이 마주하게 되었다. 해역사령부에서는 함장 재량하에 발포하라는 전통문이 내려왔다. 우리 공군기가 날아오고 북한에서도 미그기가 출격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양측은 한동안 대치 끝에 불상사 없이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2010년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천안함이 북한군의 어뢰 공격으로 46명이 전사한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류가 공동생활을 시작하면서 전쟁은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오늘날에도 지구상에 전쟁이 끝나는 날이 없다. 전쟁에 관한 소설로는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가 있다. 배경이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할 때이므로 규모가 크고, 등장인물도 황제로부터 병사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인간들의 삶과 죽음이 그려지는 대작이다. 러시아의 1812년 전쟁, 아우스터리츠, 볼로디노, 센그라벤 등 각지의 주요 전투가 소개되고 모스크바가 불타고, 이후 추위에 지친 프랑스군이 퇴각하기까지 전쟁과정이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주요 주인공은 안드레이, 피에르, 나타샤 세 사람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명예욕이 강하고 현실적이었으나 오스트리아의 아우스터리츠 전쟁에 참여하여 상처를 입은 뒤 허무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피에르는 인생의 목적은 사는 데 있다는 삶의 철학을 깨닫고 나타샤를 만나 새로운 생활의 길을 떠난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오만한 나폴레옹을 부정하고, 러시아 농민 병사가 싸운 러시아 승리를 그리고 있다. 전쟁이 없으면 평화가 찾아오고,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교훈을 준다.


    한국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 좌우 대립과 분단의 역사, 6.25 전쟁 그리고 휴전하기 전까지 빨치산 전투를 생생하게 그린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있다. 이 작품은 좌우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과 토착세력 및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우익세력이 전쟁을 통해 서로가 뒤바뀌는 혼돈의 역사를 전개하고 있다. 배경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을 주 무대로 하고 지리산의 빨치산이 등장한다. 벌교에 등장하는 장소며 사람들 그리고 그 고장 특산물인 꼬막 이야기 등 당시 실상이 잘 나타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장소에 대한 호기심으로 꼭 한번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두 사람은 염상진과 김범우이다. 염상진은 교사가 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공산주의 사회건설을 꿈꾸었고, 지리산 빨치산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반면, 김범우는 지주 김사용의 아들로 학병 출신이며 미군전략정보처의 OSS 요원이기도 하였으며, 기본적으로는 민족주의자나 반미성향이 강하고,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도 한 사람이다. 이 소설은 좌우 대립과 6.25 전쟁 등 내용을 역사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남로당, 빨치산, 북한 인민군에 대한 미화와 왜곡 논란이 일었고, 검찰에 기소되었다가 2004년 불기소처분되었다. 요즈음 ‘김일성회고록’이 출판되는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아직도 우리는 북한에 대하여 반북이냐 친북이냐 남남갈등 상태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을 했다. 양국은 싱가포르·판문점 선언 존중, 북한 인권 및 대북 제재 이행,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안정, 한·미·일 협력을 명기하고, 미사일 지침 폐기, 해외 원전 시장 공동 진출을 합의하였다. 우리 기업 삼성전자, SK, LG, 하이닉스 4대 기업이 44조 원을 미국에 투자하고, 삼성이 국내에서 모더나 백신을 위탁 생산하기로 하고 국제 백신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로 하였다. 중국에 대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5G·6G 기술에 대해 한미 간 협력도 합의하였다. 특히 우리 국군용으로 백신 55만 명을 확보하였다. 양국 간 백신 스와프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를 두고 44조 원 선물만 주고 백신 55만 명분만 챙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기우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 정상 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이 제자리로 복원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지난 21일 백악관에서 6.25 전쟁 영웅인 랠프 퍼킷 주니어 예비역 미 육군 대령이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받고,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함께 퍼킷 영웅 옆에 무릎을 꿇고 찍은 사진이다. 피를 나눈 혈맹을 과시하고, 잊지 말자는 상징이다. 유럽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진나라로 통일되기 전까지 100개가 넘는 나라가 난립하여 전쟁이 일상화된 시기이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 전쟁을 잘하는 강대국이다. 특히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비합리적인 나라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굳건한 안보의식과 국방태세가 강하게 요구된다. 춘추시대 사마병법에 의하면, “나라가 비록 크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비록 평안하더라고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라고 하였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쟁기념관 앞 그리고 미국 워싱턴 전쟁기념관 ‘한국전쟁구역’에 쓰여있는 문구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준비하고 깨어있는 자가 누릴 수 있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보장된다. 전쟁을 대비하는 자가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삼가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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