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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기사입력 2021.11.0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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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이루워지기를 기원한다.

    [논평=열린정책뉴스] 지난 2003.9.16.~ 9.20 (4박5일) 일정으로 남북교류 협의회 대표단 100명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는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500㎞를 날아 55분 만에 평양에 있는 순안 국제공항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방북은 처음이라 설레임 속에 도착하니 공항건물에는 빨간색 글씨로 “평양”이라는 간판과 대형 김일성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트랩에서 내리자 관계자들은 여권 대신 발행된 “방문 확인증”과 본인 여부를 일일이 대조하였다. 활주로에는 고려항공 소속 비행기 대여섯 대만 보였으며, 대합실에 들어서니 공안요원, 안내원, 군인들만 있을 뿐 너무나한산 했다. 입국장에는 남·여 화장실 서너 개 씩 설치되어 있었고 낡고 비좁은 대합실은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한눈에 읽을 수가 있었다. 그때의 평양 모습은 너무도 암담하였기에 같은 민족인데도 굶주리며 살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삶을 보면서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만 앞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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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태 열린정책뉴스 논설위원 

     

    내가 평양을 다녀왔던 때로부터 불과 14년이 지난  2017년 10월 6일부터 2018년 6월까지 한국 언론인으로는 최초 단독 방북 취재에 성공하신 진천규 특파원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흐른다" 책을 읽으면서 평양 구석 구석까지 그들의 삶 속에 변해가는 생활과 의식구조까지 구첵적으로 소개해주신데 대하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아울러 그때 내가 살펴보았던 평양의 모습들이 너무 많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5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선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맞춰진 표준시를 30분 당겨 우리보다 30분 빨리 가게 했던 시간을 다시 늦춰 서울 시간과 맞춘 것이다. 이는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윈장이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난 10년간 남과 북은 여러 모로 많이 닮아 갔고, 지금 이 시각에도 소리 없이 통일은 한 발씩 한 발씩 우리 곁으로더 가까이 다가 온 중이라고 썼다.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에는 벼가 무르익어가고 큰 평야 지역은 관개수로와 농지정리가 말끔히 되어 있었다. 들판을 가득 채운 황금색 벼와 허리 숙여 벼를 베는 농부들의 모습은 1990년대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이것 역시 우리의 지난 시절 풍경과 다를 것이 없다. 학교 일과를 대신해 "모내기 봉사 활동", "보리 베기 봉사 활동", "추수 봉사 활동" 등을 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우리와는 달리 북에서는 아직 전통 노동력에 의지해 노동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평양에 가까이 갈수록 달라졌다. 정주역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자 "뜨락또르(트렉터)"가 많이 눈에 띄고 추수가 끝난 곳도 많았다. 

    평양 근처 순안에는 저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서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이동하는 철로 인근에는 "내 나라 제일 좋아", "조국이 기억하는 애국자가 되자" 문구가 쓰여진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개선문 앞 칠성문거리에는 족히 4km 넘게 길게 이어지는 살구나무에서 만개한 살구꽃이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평양에는 살구나무가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어 있다. 평양 최고 명당터에는 김일성 광장이 자리 잡고 있다. 수십만 명이 집결하는 대규모 국가 행사가 열린 곳으로, 주석단이 위치한 곳이 인민대학습당 건물이다. 1982년에 건립해 만 17세 이상의 인민이면 누구나 출입증을 발급받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구내 식당, 휴식시설 등도 갖춰져 있다.

     

    평양의 아파트는 대개 8~15층 사이의 복도식 아파트이고, 대표적인 단지는 1982년 평양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문수거리 아파트이다. 2만여 세대의 대규모 단지로, 대동강을 중심으로 오른쪽인 동평양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려명거리,미래과학자거리, 은하거리 등 "김정은 시대"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 거리는 평양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기존 아파트들이 10층 내외의 단순한 디자인과 단조로운 색조였던 반면 최근 건설된 아파트는 30~70층의, 컬러풀한 색채,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으로 야경 또한 무척 화려하다.

     

    도로에는 버스, 자동차와 함께 레일을 따라 일정한 궤도를 운행하는 궤도전차가  다니는 것과 광장에서 거리선전대가 출근하는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모습은 서울에서 볼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다.평양은 대동강을 중심으로 서쪽 지역을 서평양, 동쪽 지역을 동평양이라 하고, 보통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곳을 본평양이라 한다. 서평양에는 김일성광장, 천리마 동상, 옥류관 등 모여 이곳이 평양의 중심부이다. 본펑양에 평양역과 고려호텔 등이 있다. 대동강의 서쪽 모란봉 구역에 모란봉 공원이 있다. 모란봉 바로 앞 바로 앞 남쪽으로 대동강이 흐르고 있고 대동강 가운데에 능라도가 있다. 모란봉 북쪽 기슭에는 김일성경기장과 모란봉 극장 등이 있고, 서쪽 끝에 옥류관이 있다.

     

    평양의 아침 출근길 풍경을 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 만원버스,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과 학생들의 모습은 우리와 비슷 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고, 평양대극장 앞 광장에서 거리선전대가 출근하는 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율동을 하는 모습은 우리와 달라 이색적이었다.부지런히 출근길을 재촉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활기찬 "수도평양"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북녘에서는 소학교 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교복을 입고, 만 7세부터 13세까지의 아이들은 소년단에 가입해 붉은색 소년단 스카프를 맨다. 장난치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그 순수한 모습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평양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이다. 음식점과 백화점에서는 물론이고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도 자유롭게 통화하고, 길거리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걷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000년 당시에는 평양 시내가 한산 했다.자동차가 많이 보이지 않았고 텅 비어 있는 도로와 제복 입은 여성 교통경찰관이 수신호로 차량 통제를 했다. 이제는 출퇴근 시간에 꽤 많은 차량이 이동하고 있었다. 교통안전 이라는 문구를 단 교통지도 차량이 곳곳에 서 있었고, 교통 위반을 단속하는 요원도 보였다. 시내 도로 신호체계도 우리와 동일 하다. 평양의 대중교통 수단은 네 가지로, 지하철, 전차 (괘도전차.무괘도전차), 택시가 있다.

     

    지하철은 평양 시민들이 버스 다음으로 많이 이용하는 교통 수단이다. 지하철은 1970년대 만들어 졌는데 핵무기 공격에도 파괴되지 않고 대피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하 100~150m 정도에 건설되었다. 그 밖에도 승합차를 많이 이용 한다.택시의 수가 아주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한다는 것이다. 평양 시내에만 6,000대 이상택시가 있고, 택시회사도 5~6개가 된다고 한다.

     

    사회주의 체재에서는 국가에서 계획한 대로 상품을 만들어서 배급하기 때문에 상품 광고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물품이나 용도만 적은 간판들이 걸려 있다. 예를 들어 신양 식료품 상점, 약국, 평양 비단 상점, 꽃빵, 조선옷점, 옥류교 식당, 관광 기념품 상점, 대동문 미용원, 청량 음료, 솜사탕 처럼 가게 성격을 알리는 글자만 붙여 놓은 식이다. 그런데 북한산 국내 자동차인 평화자동차 광고이다. 이런 광고 간판은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다.입맛과 먹방의 세계는 남북이 따로 없다. 평양 시민들은 옥류관의 냉면과 " 이딸리아 료리전문식당"의 피자와 스파개티를 동시에 즐기고 있었다.평양에서 유명한 식당은 옥류관, 청류관, 해맞이식당, 종합봉사선 무지개 호, 류경관 등이다.옥류관은 미리 발급받은 식권을 내고 입장하는데,식권은 직장 단위, 지역단위로 정해진 수량 만큼 지급된다고 한다. 각룸 마다 내는 요리가 다르다.1층 가장 넓은 홀에서는 평양냉면을 먹고, 2층의 한 룸에서는 고기쟁반국수, 또 다른 룸에서는 자라탕 등 탕류를 먹고, 3층에서는 소불고기를 구워서 먹는 식이다. 고기쟁반국수를 시키면 "평양주" 술 한 잔이 함께 나온다. 술을 한 모금 마시고 국수를 즐기는 "선주후면"이다.청류관은 평양 4대 음식인 평양냉면,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 녹두지짐이를 메인 메뉴로 내고 소불고기와 오리불고기 등 숯불구이로 인정받는 대표 식당이다. 온반은 밥에 닭이나 꿩, 소고기를 고아 우려낸 육수를 부어 먹는 국밥 일종으로 즐긴다.

     

    대동강맥주는 2016년 8월 평양에서 축제를 열어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모든 재료는 북한산으로 사용하는데 양강도, 자강도와 평안북도에서 생산한 보리와 홉을 사용하며 쌀을 섞는다는 점이 색다르다. 평양에서도 피자와 스파게티 같은 이탈리아 요리가 인기 메뉴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일반시민들이 이탈리아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평양 시민들은 서양식 음식과 생활을 즐기고 있다.

     

    북녘의 잔칫상도 푸짐하기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테이블마다 10여 가지의 다양한 음식들이 놓여 있고, 각자의 접시에 덜어서 먹는다. 돼지훈쌈, 훈제요리, 탕수육, 새우튀김, 청포묵무침, 버섯볶음, 갖은 나물무침, 잡채, 동태전과 호박전등 몇가지 전, 소적쇠구이 등을 먹고 나중에 냉면을 맛보기 식으로 작은 그릇에 나온다.북녘의 조형물들은 대체로 우월성을 선전하기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김일성광장과 마주보고 서 있는 주체사상탑은 꼭대기에 있는 햇불만  20m이고, 이를 포함한 전체 높이가 150m인 거대한 구조물이다. 마치, 낫, 붓으로 구성된 조선 노동당창건기념탑은 전체 높이가 50m인데 평양 시내 곳곳에 세워진 각종 대형 조각품들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작품들이 만들어진 이유와 과정, 전하고자 하는진정한 의미를 "교육지침"에 근거해 설명해 준다.

     

    평양 시민들의 옷차림이 13세 이하의 학생들은 붉은색 소년단 스카프를 매고 교복을 차려 입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지만, 교복 위에 화려한 색상의 외투를 덧입고 손목 시계와 레킹스로 멋을 낸 아이들이 많았다. 성인들의 옷차림은 더욱 다양했다. 짧은 스커트와 하이힐의 양장 차림이 대표적이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 한복을 외출복으로 입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생활의 기본은 국가로부터 배급이다. 공동생산, 공동분배라는 사회주의 체제 원칙에 따른 것이다. 쌀 등의 주식은 물론이고 간장, 고추장 등 장류도 매달 적정량 배급받는다고 한다. 물론 개인이 시장을 통해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여 먹고 입고 사용하기도 한다.북녘에도 기독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배도 우리 식과는 무척 다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내가 눈으로 보니 우리의 기독교 예배와 같았다. 신자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성가대와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북한은 아직까지 대체로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생활 하면 경제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유지되는 요인도 작용하는 것 같다.최근 10년 사이 대규모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무섭게 변했다. 려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에는 초고층 신식 주거용 건물들이 들어 찼고 그 높이와 위용은 서울 아파트 못지 않다. 평양 시내의 대표적인 거리로 창전거리, 은하거리, 위성거리가 있다. 공사 기간도 기존의 천리마 속도에서 만리마 속도로 빨라졌다. 이런 거리의 아파트는 주변에 근무하는 주민들을 우선으로 배정한다.

     

    미래과학자거리에 높은 아파트는 53층이고, 려명거리에는 73층 아파트가 있다. 평양에서는 집의 크기를 평수가 아니라 방의 갯수로 계산 한다. 더 나은 여가를 찾아서 볼링, 탁구, 포켓볼도 최근 시민에게 인기 있는 종목이다.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은퇴한 노인들은 공원에 모에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하고, 강가에서 운동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평양에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젊은이들의 정신력이 우리가 아는것보다 훨씬 더 굳건하다는 것이다. 계속되어온 경제제재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는 젊은이들은 없었다. 

    미국과 대등하게 협상해 한반도에 평화가 완벽히 보장되면 자신들은 더욱 풍족한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지신감을 드러내곤 했다. 주위 시선에 상관없이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취미생활을 하며 즐거운 일상을 보내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자연스런 그 모습을 보면서 평화는 소중하다. 

     

    지구상에 단 하나 남은 분단국가, 한반도. 최근 급속히 전개되는 평화 분위기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은이들이 자유롭고 자신의 꿈과 포부를 펼치고 젊은 연인들이 전쟁에 대한 공포나 불안 없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것이 쉽지 않은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평양 시내에는 사회주의 특유의 정치구호와 선전 문구가 눈에 띈다. 더구나 상업광고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문구들이 도시의 외관을 특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라는 문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혁신적인 문명국가를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인민경제의 자립성" 같은 문구도 많이 보이고 "불패의 핵강국" 같은 문구로 핵 무력을 완성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70여 년간 경계와 갈등을 반복한 결과 우리는 서로 무었을 얻었는가? 이제 누구나 서울에서 대동강맥주로 건배하고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평양에서 전주비빔밥과 부산 돼지국밥을 먹는 날이 와야 한다고 썼다.

     

    노무현 정부 들어 햇볕정책으로 남북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차츰차츰 남북관계는 나빠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진행되어 오던 햇볕정책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이명박 정부를 거치고, 박근혜정부로 이어지면서 남북관계는 더욱 긴장 속으로 매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북간의 관계는 더욱 나빠져가고 긴장과 핵전쟁의 두려움으로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공포속에 휩쌓여 갔다. 하늘도 무심치 않았는지 지구촌 사람들의 염원이 통했는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차츰 대화의 물고가 열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화와 설득의 정책이 맞물리면서 통큰 두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통큰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동의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은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서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밀고 나가며,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선언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여세를 몰아 하루 빨리 남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남북 통일이 이루워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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